이른 새벽 마리아처럼 그 주의 첫 날 새벽 아직 어두울 때, 막달라 여인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요 19:1) HOME  >  그리스도의 편지  >  이른 새벽 마리아처럼
침례의 더 깊은 의미 작성자김바울 작성일2019.08.25 조회수2749 댓글0

 

 

 

처음 침례를 받은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전후 사정은 이랬습니다. 제대 후 복학해서 학교 중앙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릴 때였습니다. 하루는 오솔길을 따라 도서관으로 올라가는데, 길옆 벚꽃 나무에 한 대학생 선교단체가 붙여 놓은 성경공부 안내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어로 성경을 배운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결국 그 단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농대  학생이던 총무 형제가 라디오 프로그램인 ‘our daily bread’를 카세트로 녹음해 온 것을 아침마다 듣고 교제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여름 방학이 되었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그 선교 단체 소속 학생 전체가 몇 대의 버스를 대절하여 강원도 고성 쪽으로 여름 수련회를 갔습니다. 수련회 장소는 운동장이 바닷가와 맞닿은 한 시골 초등학교였습니다.  마지막 날에 운동장 앞 바닷가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분위기에 휩쓸려 받았을 뿐 침례의 의미에 대한 바른 인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후 침례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함을 간증하는 것임을 알고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아래 말씀을 읽고 추구해 볼 때, 침례의 의미가 전보다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εἰς) 침례를 주고(마 28:19)

 

우리가 알듯이 위 본문은 부활하신 후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흔히 복음 전파에 대한 지상 명령을 강조하는 설교나 제자 훈련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혹은 삼위일체의 근거 구절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누린 부분은 그도 저도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 주는 방면입니다. 특히 ‘안으로’라는 전치사의 의미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의 깊은 뜻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 묵상을 통해서도 성경을 건성으로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안으로(εἰς, into) :일반적으로 성경적인 침례의 의미에는 ‘ 영역에서 나와 다른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침례의 물속에 우리의 온몸이 잠기는 것은 십자가에서 끝난 우리의 옛사람을 물속에 장사 지내는 것입니다(롬 6:6, 4). 그 후에 물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장사 지낸) 그 옛사람에게서 나와 주님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영역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연합한 것을 표징 합니다(4-5절). 이러한 두 영역 사이의 이동이라는 개념을 뒷받침해 주는 단어가 바로 헬라어 ‘에이스(1519)에 해당하는  전치사 into(혹은 to)입니다. 즉 이미 어떤 장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가리키는 ‘엔’(1722)(영어 ‘in’)과 달리, 이 ‘에이스’(영어 ‘into’)라는 전치사는 “어떤 장소나 시간이나 목적에 도달한다” 혹은 “… 안으로 들어간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개역 성경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한글 성경이 이 단어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침례 받아 들어갈 영역이라는 원문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마치 이 이름이 침례를 주는 도구 혹은 수단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따라서 개역 성경으로 이 구절을 읽으면, 침례를 통해 어떤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습니다. 영어 성경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즉 킹제임스 성경을 포함한 대다수 번역본은 위 본문에 나오는 ‘에이스’(εἰς)’를 ‘into’가 아닌 ‘in’으로 번역했습니다(그러나 KJV 성경은  같은 단어가 쓰인 고전 12장 13절에서는 baptized into one body로 바르게 번역함). 오직 ‘영어 개역(ERV)과 ‘웨이마우스 신약(WNT)만 원문대로 ‘into’라고 번역했고, ‘다아비 역’과 ‘Young의 직역 성경’(YLT)도 이것을 ‘in’이 아니라 방향성을 살려 ‘to’로 나름대로 잘 번역했습니다.

 

이처럼 하찮아 보이는 전치사 하나도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가면서 원문의 바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자신(생명 주는 ) 안으로의 침례 : 성경은 위 본문을 포함하여 최소한 네 곳에서 (어떤 영역) ‘안으로’ 침례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삼일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름 안으로 침례(마 28:19),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갈 3:27),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롬 6:3), 안으로 침례(고전 12:13)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추구를 통하여, 우리가 침례 받아 들어가는 영역은 각기 다른 네 곳이 아니고 사실상 한 영역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영역은 다름 아닌 생명 주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입니다(롬 6:3-5). 또한 이러한 이해는 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에서 ‘이름’이 삼위의 세 위격을 다 포함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리킨다는 것을 바로 아는데 달려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헨리 알포드는 자신의 책에서 위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사용된  ‘에이스’를 설명하면서, ‘주님 자신을 (삼위 중 제2 격 만이 아니시고) “신격의 위격들 전체가 안에서 나타나신 ”으로 설명합니다(made to the Baptism of the Lord Himself, where the whole Three Persons of the Godhead were in manifestation)(p. 307). 그의 이러한 해석은 골로새서 2장 9절(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말씀과 일치합니다.  아래 설명은 침례에 대한 위 네 성경 구절들을 바로 이해한 상태에서 성경적인 침례의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정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그리스도 안에 포함되며, 그리스도께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삼일 하나님께서 결국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이시기 때문에, 새로운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 그리스도 자신 안으로, 삼일 하나님 안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를 주는 것은 단 한 가지 일을 하는데, 그것은 곧 부정적인 것들을 처리하는 면에서는 그들의 생명을 끝내고, 긍정적인 것을 이루는 면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그들의 생명,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싹트게 하는 것이다”(WL, 마태복음 LS, # 72, 820쪽).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아 그 몸의 지체가 된 사람들은 이제 한 가지를 더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 머물면서, 쉬지 않고 영을 마시는 (to drink one Spirit)입니다(고전 12:13).

 

 

 

 

오 주 예수님, 우리를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당신 자신 안으로 침례 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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