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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고 체험하고, 하나의 터 위에서 교회생활을 실행하는 큰 두 항목이 있습니다. 이 두 항목들은 수년 동안 잃어버렸거나 손상되었기에 주님이 회복하실 필요가 있는 것들입니다. ‘회복’이라는 단어는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거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릴 때 쓰는 말입니다. ‘회복’이라는 명사는 손상 또는 손실이 발생한 후에 정상적인 상태로 복원하거나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들을 회복하신다는 것은 교회 역사에 걸쳐 그것들이 잃어버린바 되었거나 잘못 사용되었거나 부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하나님의 관점에서 회복이란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틴루터, 진젠돌프 백작, 존 넬슨 다비,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지방 교회들은 수세기 동안 하나님의 회복의 일의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는 그분의 백성 중 어떤 이들이 반드시 본래의 그분의 의도를 관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본래의 의도를 지키지 않는 어떤 일들을 하도록 내버려 두실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현재 자신의 상황이나 전통적인 실행들만을 관심하고,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을 관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주님의 회복 안에서 쓰임 받은 이들은 현재의 상태나 일들을 관심하지 않았고,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목적만을 관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회복은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사람이 단체적인 그분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의 통치권을 위임받아 그분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은혜 시대에 단체적으로 이 목표를 성취하도록 계획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에 구속이 필요했고, 하나님의 구속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손상되고 오염된 사람을 본래의 의도대로 복원시켜서 사람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목표는 믿는이들이 죽을 때 소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목표는 그분의 영원한 목적의 성취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수세기에 걸쳐 교회가 하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래의 의도대로 교회를 회복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동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약에 계시된 교회의 실행들은 단지 역사적인 일일뿐 현재의 교회 실행의 표준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신약의 계시가 단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 교회 생활의 실행을 지배하기 위한 표준이라는 것을 본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관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의견에 맡기거나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길은 그분의 말씀 안에서 분명하게 계시되었습니다. 성경의 계시가 복음과 구원과 합당한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하여 표준이 되는 것처럼, 교회에 관하여서도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신칭의以信稱義)에 관한 진리를 사람의 타고난 관념에 따르지 않고, 성경의 순수한 계시에 따른 구원의 진리를 분명하게 열어주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에 대한 계시와 실행 또한 역사적인 교회의 전통이나 타고난 사람의 관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성경의 표준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따라, 이 시대에서 교회 생활의 실제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성경적인 길을 걸어간 신실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역할

하나님의 회복, 특별히 교회의 회복은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하시는 것처럼, 그분은 불변의 계획을 세우시고 교회가 특정한 역할을 맡고 특별한 책임을 이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주권으로 그분의 표현을 얻기 위해 땅을 회복하시기를 갈망하십니다. 그분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는 천국의 실재 안에 사는 유기체가 되기를 의도하셨습니다. 천국의 축소판인 교회는 천년왕국 시대에 도래할 천국의 출현을 준비합니다. 또한 교회는 사탄과 모든 어두움의 세력 위에 그리스도의 승리를 집행하는 영적 싸움의 일을 수행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집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건축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랑이신 주님께서 다시 돌아오실 때, 교회는 주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신부로서 그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에 대한 그분의 표준을 낮추시지 않으실 것이며 교회에 대한 그분의 의도를 결코 포기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의 건축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가 건축될 때, 시대는 종결되고 왕국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교회는 단지 그분의 계시를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반드시 계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은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마귀 사탄은 교회역사에서 개혁의 초기부터 회복을 극심하게 반대해왔습니다. 대적은 하나님의 회복이 완결되고 실질적인 교회 생활이 성취되어 그분께서 만족하실 때, 그 자신이 영원히 멸망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복에 반대하는 악한 영적 세력의 대항은 너무나 맹렬합니다.

회복의 예표

회복은 단지 신약의 현상만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오늘날 하시는 회복의 예표를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좋은 땅으로 들어가려 할 때, 주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그들이 선택한 곳에서 경배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신 12). 그들은 자신의 눈에 옳게 보이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제한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체적인 경배 장소를 선택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해진 때에 정해진 제물들을 갖고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오직 예루살렘 시온산에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하락하고, 특히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은 크게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넘어 갔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칠십 년 동안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한 것이 성취되도록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죽던 해, 바사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축하도록 허락하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분명히 말하기를 오직 소수의 숫자만이 되돌아 왔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번제단을 세웠기 때문에 받은 반대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성전을 재건축했고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것이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집과 성의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택하셨고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분은 예루살렘 성 안에 성전이 건축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유대인들이 알다시피, 택하심 받은 예루살렘 성 외에는 다른 곳에 성전을 건축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오늘날의 교회에 대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교회들이 여러 지방에서 세워져 건축되기를 의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시대 이후에 교회에 대한 성경적인 이상과 합당한 교회 생활의 실행이 점차로 희미해졌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지방의 터 위에 있는 교회들 대신에 모든 종류의 교파들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의 실지적인 표현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세기에 걸친 교회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분을 만족시킬 교회를 갖기를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의 때부터 수 세기 동안 하나님은 그분의 길에 따라 그분의 회복을 수행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교회와 교회의 실행에 관한 특별한 선택을 하셨고 그분의 뜻이 높여지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수행되기를 계획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부분이 그분의 본래의 의도로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갈망을 위하는 소수의 남은 이들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갖기로 계획하셨고, 주 예수님은 교회를 산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하셨고, 사도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각지에 지방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 이후에 교회는 하락하고 주님의 의도로부터 멀어져갔지만, 주님은 교회를 회복시켜 그분의 눈에 비정상적인 모든 것들을 정상으로 돌려놓고 계십니다.

회복의 간략한 역사

하나님의 회복은 20세기에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회복의 시작의 정확한 날짜를 말할 수는 없지만, 종교개혁이 있었던 1517년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회복은 특정한 단계들을 거쳐 왔습니다. 종교개혁의 단계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한 진리가 회복되었습니다. 게다가, 성경은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에 보낸 서신서에 분명히 나와 있듯이, 종교개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하게 수행하는 대신에, 여러 개신교 교파들을 형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은 더 전진하셨습니다. 18세기에 주님은 진젠돌프의 인도아래 보헤미아(Bohemia)에서 교회 생활을 부분적으로 회복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초 주님은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와 다른 이들의 인도 하에 있던 플리머스 형제회(Plymouth Brethren)를 일으키심으로 회복 안에서 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처음 형제회는 절대적이었고 그 당시 종교 제도에서 나와 세상의 허영을 버리고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단순히 형제로서 모였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이름 안에서 그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축복하셨고, 특별히 성경의 순수한 계시에 따라 수많은 소중한 진리들을 그들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형제회 내부에서 성경의 일부 교리적인 논쟁 때문에 분열이 있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수천 개의 작은 그룹들로 분열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형제회는 몸의 하나를 잃게 되고 ‘참된 하나’ 위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축복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은 몇몇 사람들을 일으켜 속 생명의 여러 진리들을 회복하심으로 크게 반응하셨습니다. 이들 중에는 제시 펜 루이스(Jesse Penn-Lewis)와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가 있었고, 이들은 각각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진리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신 진리를 보았습니다. 주님은 20세기에 중국에서 그분의 회복을 위해 워치만 니를 일으키셨습니다. 워치만 니를 통하여 교회의 터에 관한 진리와 지방의 경계에 대한 진리가 회복되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중국과 극동에서 교회 생활의 진리들을 사역했고, 이러한 사역의 결과로 수백 개의 지방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은 과거 그분의 회복으로 부터 고립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앞서간 모든 분들의 어깨 위에 서있으며, 주님의 회복 안에서 열려진 모든 진리들을 풍성한 유산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1. 로마의 클레멘트 (CLEMENT OF ROME) - 로마의 감독으로서, 삼일성, 그리스도의 신성, 은혜에 의한 의롭게 됨, 교회의 합일에 관한 분명한 간증을 짊어졌다.
2. 이그나티우스 (IGNATIUS) - 안디옥의 감독으로서, 그의 일곱 서신은 초기 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로마의 군병들에 의해 순교 당하면서 그는 핍박자들에게 “나를 짐승들에게 던져주시오. 그것들에 의해 나로 하나님의 동참자가 되게 해 주시오”라고 말하였다.
3. 폴리캅(POLYCARP, 주후 69-155) -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 서머나의 감독이 되었다. 그의 저작들에는 성경적 구절들이 자주 인용되었고 이단적인 그노시스주의자 마르시온을 대항하여 싸웠다.
4. 이레니우스(IRENAEUS, 주후 130-202) - 폴리캅의 제자이며 리용의 감독이었다. 「모든 이단들을 반대하여(AGAINST ALL HERESIES)」를 기록하여 그노시스주의와 다른 이단들을 반대하였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분 안에서 첫 아담이 상실한 것을 회복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셨다고 천명했다.
5. 터툴리안(TERTULLIAN, 주후 160-225) - 아프리카인 교부로서, 이레니우스에 교리적 기원을 둔 저명한 변증가이다. 자신의 변증문 「파락세아스를 반대하여(AGAINST PARAXEAS)」에서 삼일 하나님의 한 본질과 세 위격들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였는데, 이는 후에 니케아 신조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노시스주의(마르시온의 교리)와 도세티즘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로마 정권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변호하였다.
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주후 155-215) - 아테네에서 출생하였다. 판타에누스의 제자이며,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교사가 되었다. ‘로고스’, 즉 육체가 되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강조하여 강해하였다.
7. 오리겐(ORIGEN, 주후185-254) - 이집트에서 출생하였다. 클레멘트를 승계하여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교리문답 학교의 교장이 된 창의력이 풍부한 작가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 중 하나인「헥시플라(Hexapla」는 히브리어 구약과 더불어 아퀼라역, 심마쿠스역, 70인역, 테오도시온역 등 헬라어로 된 구약에 다양한 주해를 달아 놓은 것이다. 영원한 복음의 능력을 생활 가운데 체험한 자들로 구성된, 교회의 하늘에 속한 본성을 보았고「우리의 기도」에서 기도는 단지 ‘간구’가 아닌 ‘하나님의 생명에의 참여’라고 말하였다.
8.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주후296-373) - 주후 325년 니케아 신조의 체계화에 공헌하였다.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고 아리안주의를 대항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수호하였다.「하나님의 말씀의 육체되심에 관하여(ON THE INCARNATION OF THE WORD OF GOD)」에서 그는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되게 하려하심”이라고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9. 제롬(JEROME, 주후 340-419) - 이탈리아에서 출생하여 후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다. 자신의 온 일생을 수도원 생활에 드렸으며, 믿는 이들이 금욕적인 생활을 살도록 격려하였다. 성경을 라틴어 불가타역(VULGATE)으로 번역하는데 20여 년을 드렸고, 구약, 신약, 교회사에 대한 여러 권의 주석서를 기록하였다.
1. 존 위클리프(JOHN WYCLIFF) 주후 1324-1384 - 존 위클리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처음으로 성경 전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주후 1382). 이는 단지 학자들을 위한 번역이 아니라, 그 때까지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었던 평범한 영국 사람들을 위한 번역이었다.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았기에, 위클리프는 강하게 그 실행들을 반대했다. 그는 교황이나 공회들이나 어느 공의회의 결의도 교회의 권위가 될 수 없고,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교회의 권위라고 강조했다.
2. 존 후스(JOHN HUSS) 주후 1370-1415 - 위클리프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후스라는 학자는 보헤미아(오늘날 체코의 서부지방)에서 또 다른 개혁의 움직임을 전개하였다. 위클리프처럼 후스는 성경을 평민이 사용하는 체코어로 번역하였을 뿐 아니라, 체코어로 말씀을 전하여 체코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교황청의 부패에 대한 후스의 비판은 천구교의 강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는 공의회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3. 보헤미아 연합 형제회 (UNITED BRETHREN IN BOHEMIA) 주후 1457-1621 - 보헤미아 연합 형제회는(고대 형제회 혹은 고대 연합 형제회로 알려져 있기도 함) 1457년 3월 1일 보헤미아의 쿤왈드에서 시작되었다. 스스로 “그리스도의 율법의 형제 자매들”이라 불렀던 이들은 심하게 핍박을 받았고 많은 이들은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 그들의 찬송가는 카톨릭 교회 밖에서 출판된 최초의 찬송가였다. 헬러어와 히브리어 원어를 번역해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만들었다. 크랄리츠(KRALITZ)성경이라 불리는 이 번역본은 1593년 출판되었다. 연합 형제회는 성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신약의 말씀을 논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4. 카스퍼 반 슈벵크벨트 (KASPER VON SCHWENCKFELD) 주후 1489-1561 - 슈벵크벨트와 그를 따르든 이들은 카톨릭과 루터교와 재침례교와 개혁 교회들로부터 떨어져서 모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하여 많이 보았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회복하고, 정결케 하고, 거대한 일을 하던 16세기의 모든 개혁가 중에서, 아무도 생활과 성격에는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었고 미신과 전통을 걸러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실제 안에 근거한 기독교를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가져오는 임무에 실레지아(SILESIAN)의 귀족인 카스퍼 슈벵크벨트보다 더 단호하게 자신을 드린 사람이 없었다.
1.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주후 1483-1546) - 마르틴 루터는 교회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부패한 카톨릭교회를 개혁하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인물이었다. 그를 통하여 주님은 암흑시대를 끝내시고 열려진 성경을 세상에 되돌려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선 루터의 영향으로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다. 독일 작센의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난 그는, 수도회에 가입했다가 종교의 중심지인 로마를 방문하여 성직자들의 허례의식과 부패를 보고 크게 실망하였다. 이후에 그는 사람의 구원이 결코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발견하였다.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경이 독일 군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2. 츠빙글리(ULRICH ZWINGLI, 주후 1484-1531) - 스위스 종교개혁의 지도자이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였다. 성경을 유일하게 통제하는 원칙으로 여겼다. 구원은 믿음으로 인한 것임을 보여주는 67권의 짧은 에세이를 기록하였고, 카톨릭의 미신들을 부인했으나 침례에 관한 진리에 관해서는 분명치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3. 존 칼빈(JOHN CALVIN, 주후 1509-1564) - 그의「기독교 강요(THE 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는 종교 개혁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을 가장 건전하게 조직화하고 가장 분명하게 체계화한 책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와 침례는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를 대표한다는 진리를 발전시키고 강해하였다. 하나님의 영광, 믿는 이들의 예정, 구원의 보증,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로써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 위해 수고함과 같은 진리들을 강조하였다. 성경에 대한 각주를 썼고 종교개혁기 중에 가장 많은 권수를 저작한 저자로 평가된다. 장로들의 교회 치리를 주장했고, 스코틀랜드의 개혁자들이 그 점을 따랐으며 이것이 장로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4. 재침례파(ANABAPTISTS) - 사실상 침례교도들이었던 독일 형제단의 회중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의 진리를 전파하였다. 유아 세례의 오류를 보았으며, 종교적인 형식과 세상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영 안에서의 주님과의 교통을 회복하였다. 옥중에서 많은 찬송이 쓰여 졌으며, 주님을 위한 고난과 그분에 대한 사랑의 체험을 극도로 표현하였다.
5.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주후 1494-1536) - 영국의 사도라 불린 윌리엄 틴데일은 순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성경을 원문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영국의 종교개혁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이단이라는 누명을 쓰고 순교 당했다.
6. 청교도(PURITANS) - 칼빈주의 영향의 결과로 일으켜졌다. 성경을 근본적인 권위로서 높였으며 니골라당의 교훈과 우상 숭배를 거절하였다. 성경적인 방식에 따라 교회를 세울 것을 결정하고, 핍박을 받고 네덜란드로 피난하였다. 1616년에 회중 교회를 설립하였고,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항해했으며,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기초를 놓았다.
7. 존 번연(JOHN BUNYAN, 주후 1628-1688) - 특별한 설교의 은사를 지닌 청교도이다. 그의「천로역정」은 아마 성경 외에 지금까지 쓰여 진 어떤 책보다도 더 많이 읽혀진 책일 것이다. 그의 책의 대화의 거의 80 퍼센트가 성경에서의 직접적인 인용과 각색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는 순교하였다.
8. 야곱 스페터(J.SPENER, 주후 1635-1705) - 개혁 교회 안의 경건주의자들 중에 주된 인물이었다. 그의 시대에 이미 루터 교파가 인간의 의견으로 충만한 일종의 형식적인 종교로 타락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린도전서 14장의 가르침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사람들에게 정통적인 형식을 거절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고 가르쳤다.
1. 진젠돌프(ZINZENDORF, 주후 1700-1760)와 모리비아 형제회 - 주후 1700년쯤에 진젠돌프라는 한 청년이 주님에 의해 일으켜졌다. 그는 옛 독일의 백작이었는데 보헤미아에 매우 광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주님은 그를 사용하사 그의 재산을 풀어 도망 온 많은 청교도들을 영접하게 하셨다. 각기 다른 종파의 청교도들과 형제들이 다 그가 있는 곳으로 피난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사도시대 이후 모리비안 형제들이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실행한 첫 번째 무리의 그리스도인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요한 웨슬리(JOHN WESLEY, 주후 1703-1791) - 모리비아 형제들의 도움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믿음에 의한 칭의의 진리를 보았다. 또한 마담 귀용과 윌리암 로우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아 성화에 관한 진리를 더욱더 회복했고, 사람이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믿음에 의해 거룩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1729년에 혼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옥스퍼드에서 집회를 시작하였고, 후에 감리교회를 세웠다.
3.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주후 1707-1771) - 그의 형 요한 웨슬리의 수고와 완전히 함께 했다. 찬송 작가의 대가로서, 그의 작품은 6천곡이 더 되며 매우 높은 영적 가치를 지닌 대부분의 찬송들은 성경에서 가르친 주요한 교리의 해설을 담고 있으며, 영 안에서의 경배함과 내적인 체험을 표현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감동받은 사람들의 사모하고 찬미하는 마음들을 표현한 것이다.
4. 죠지 휫트필드(GEORGE WHITEFIELD, 주후 1714-1770) - 웨슬리 형제들과 함께 옥외 집회를 여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주님께 이끌었다. 후에 그의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일하는데 보냈다.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였고,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의 평강을 받고 구원의 결과로 즐거운 헌신의 생활을 사는 것을 주장하였다. 한 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른 모든 이름들은 단념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여지게 하소서.”

플리머스 형제들로도 알려진 이들은 하늘에 속한 교회의 부르심에 관한 두 가지 항목과 교회의 하나 됨을 회복하였다. 종파 조직이 잘못 되었음을 보았고, 오직 유일한 그리스도의 몸만이 존재하며 교회는 사람의 의견이 아닌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에 의해 세워져야 함을 깨달았다. 형제회는 구약에 있는 여러 예표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뛰어났고 유대인들에 관한 성경적인 예언들과 교회에 관한 예언들을 분명히 구별하였다. 많은 출판물을 발행하였고 오늘날까지 그들의 신학은 기독교 안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고 있다.

영적인 부분만 고려한다면 형제회의 운동이 종교개혁보다 더 유력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워치만 니는 형제회가 형제 사랑의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에 부합했다고 했다. 존 넬슨 다비는 형제회에서 가장 뛰어난 교사였다. 최고의 영어 성경 번역중 하나가 다비가 번역한 것인데 그는 성경을 불어와 독일어로도 번역했다. 개혁시대에 루터가 성경을 연 것이 사실이지만 다비와 형제회를 통해서 성경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서 성경이 처음으로 열렸다. 형제회의 주요 인물들은 조지 뮬러(GEORGE MULLER), 윌리암 켈리(WELLIAM DELLY), 매킨토쉬(C.H.MACKINTOSH),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ANTHONY NORRIS GROVES), 코테스(C.A.COATES), 로버트 앤더스경(SIR ROBERT ANDERSON)등이다.

1.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주후 1800-1882) - 존 넬슨 다비는 진젠돌프 백작 출생 100년 후인 1800년에 태어났다. 그는 15세부터 19세까지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숙하였고 성경을 독일어, 불어, 영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저서인「성경개관(SYNOPSIS OF THE BOOKS OF THE BIBLE)」은 그 분야에서 권위서로 인정되고 있으며 주님을 위해 널리 복음을 전파하였다.
2. 죠지 뮬러(GEORGE MULLER, 주후 1805-1898) -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믿음에 대한 뛰어난 공과들을 배웠다. 고아원을 설립했고 재정적인 필요에 있어서 믿음에 의한 생활을 살았으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요청할 수 있다는 진리와 믿음에 의한 생활의 간증을 회복하였다. 일생 동안 그는 수없이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3. 찰스 맥킨토쉬(C.H.MACKINTOSH, 주후 1820-1896) - 모세오경에 대한 주석을 저술한 사람이며, 그 책은 그 부류의 책등 중에 권위가 있다. 표징들에 대한 합당한 지식을 회복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모세오경 강해는 1880년에 발간된 모세오경에 대한 고전으로써 약 4대에 걸친 성경학도들의 고전이다. 이 맥킨토쉬의 저작 속에는 깊고도 복음적인 어조가 깃들어 있다.
4. 죠지 커팅(GEORGE CUTTING) - 「구원의 안전, 확신, 기쁨」을 저술하여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음을 말하였고, 또한 구원의 확신에 관한 진리를 회복하였으며 복음에 관한 진리들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워치만 니는 1933년 6월 말 죠지 커팅을 만났는데, 죠지 커팅은 워치만 니에게 “나는 그분 없이 살 수 없고 그분도 나 없인 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5. 로버트 고벳(ROBERT GOVETT, 주후 1813-1901) - 그리스도인의 보상의 문제를 보았다.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행한 것에 따라 보상을 받고, 구원은 생명의 문제이며 보상은 생활의 문제이다. 그는 진리의 두 가지 핵심적인 항목을 회복하였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인들도 천년왕국으로부터 제외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믿는 이는 신실하고 근면해야 하며 둘째는 모든 믿는 이들이 환난 이전에 휴거되는 것은 아니고 오직 이기고 신실한 믿는 이들만이 휴거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6. 펨버(G.H.PEMBER, 주후 1803-1891) - 형제회에 고벳과 동시기에 저명한 또 한 사람의 성경 교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펨버이다. 성경의 예언에 관한 많은 저작을 펴낸 그는 백여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성경학자 중 한 사람이다. 휴거에 대한 그의 관점은 고벳과 팬톤의 관점과 일치했다. 그는 오직 이기는 믿는 이들만이 대환난 전에 휴거되어 주님을 만날 것으로 여겼다. 그의 저서「위대한 예언들(GREAT PROPHECIES)」, 「지구의 초기 시대(EARTH'S EARLIEST AGES)」, 「두 바벨론(TWO BABYLONS)」은 성경에 대한 탁월한 해설로 인정되고 있다.
7. 펜톤(DAVID MORRISON PANTON, 주후 1870-1955) - 고벳의 제자이다. 팬톤도 매우 뛰어난 성경 교사였으므로 많은 이들이 매료되어 그가 인도했던 기도모임이나 성경 연구반이나 주일 학교에 참석했다. 그는 상징과 예언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권위서인「새벽(DAWN」지(紙)를 출판하였다.
1. 윌리엄 캐리(WELLIAM CAREY, 주후 1761-1834) - 윌리엄 로우(WILLIAM LAW)의 신비적인 저서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사람에게는 복음을 받을 책임과 역량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이교도들의 화심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를 논하는「탐구(INQUIRY)」를 저술하였고, 40년 동안 인도에서 복음을 전파했고 그곳에서 복음의 기초를 놓았다. 여러 인도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인도와 영국에 복음의 분위기를 가져갔다.
2. 찰스 피니(CHARLES FINNEY, 주후 1792-1875) - 19세기 미국의 대부흥을 가져온 사람이다. 그는 부흥의 의미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고, 죄인들에게는 과거를 뉘우치는 것임을 보았다. 퇴보한 교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주의하여 기울이도록 일깨우고 교정하였다. 믿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고 확대되는 것과 그들의 생활 안에서의 영광스러운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의 죄인들을 굴복시킨다고 주장하였다.
3.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주후 1832-1905) -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체험을 말하는 아가서 강해인「연결과 교제(UNION AND COMMUNION)」를 썼다. 그리스도와의 연결과 교제에 관한 진리를 회복하였고, ‘중국 내지 선교회’를 창설하여 중국에서의 복음 사역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4. 챨스 스펄젼(C.H.SPURGEON, 주후 1834-1892) - 영국 침례교 목사로서, 청교도들의 실행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신약의 원칙에 따라 교회가 세워져야 함을 부르짖었고, 설교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가난한 설교자들이 영적인 공급을 얻을 수 있도록 각처에서 그의 책들을 나누어 주었다.
5. 드와이트 무디(D.L.MOODY) - 위대한 전도자였다. 매일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실행하였고, 영국과 미국의 대도시들을 여행하였다. 기도의 필요를 강하게 주장하였고 완전히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수백만 마일을 여행했고 1억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며 75만 명의 죄인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했다.
1.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주후 1828-1917) - 기도의 사역, 성화의 실제 그리고 성령의 필요성을 다루는「그리스도 안에 거함(ABIDE IN CHRIST」,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CHRIST)」, 「지극히 거룩한 곳(THE HOLY OF HOLIES)」을 저술하였다. 영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체험을 회복하였고 마담 귀용(MADAM GUYON)에 의해 전파된 자아를 부인함에 관한 진리의 노선을 이었다. 영국의 이반 홉킨스(EVAN HOPKINS)와 다른 이들과 함께 독일, 영국 등지에서 오늘날에 케스윅 총회(KESWICK CONVENTION)의 시초가 되는 회의를 개최하였다.
2.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 주후 1861-1927) - 병상에 있는 동안 마담 귀용(MADAM GUYON)의 저서들을 읽고 십자가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주님에 의해 일으켜졌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이고 모든 영적인 인들의 기초가 된다는 진리를 전하였다. 십자가가 옛 사람을 다룬다는 것을 보았다. 영적 전쟁에 관한 진리를 회복하였고, 왕국 문제가 사람이 영적전쟁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집지를 얻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반 로버츠(EVAN ROBERTS)와 함께 「성도들의 전쟁(WAR ON THE SAINTS)」을 저술하였다.
3. 이반 로버츠(EVAN ROBERTS, 주후 1878-1951) - 왕국에 대한 진리를 회복했고 웨일즈(WALES)의 대부흥을 가져왔다. 성령의 부흥케 하는 역사는 무릎을 꿇고 굴복당한 무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웨일즈 지방은 매우 큰 지방이었고, 로버츠는 작은 예배당에서 전체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다만 다섯 마디 말을 하거나 몇 마디 기도를 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회중들은 모두 울면서 뛰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모였고, 거의 모든 가정에 부흥회가 있었고 기도회가 있었다.
1. 워치만 니(WATCHMAN NEE, 주후 1903-1972)

-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저술가, 성경 주석가, 사역자였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던 워치만 니는, 17세가 되던 1920년 중국 본토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온 일생을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워치만 니는 1920년 도라 유(DORA YU)라는 여 전도자의 복음전파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 구원받은 후에는 중국에 온 영국 선교사인 바버 자매(M.E.BARBER)에게 영적으로 양육 받았다. 사역의 초기, 그는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균형 잡히고 영적인 영문 서적 3,000여권을 독파하여 성경에 대한 탁월한 빛과 계시를 소유하게 되었다. 30년 사역 기간 동안에, 그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 수백 개의 교회를 세우는 한편, 하나님의 중심 계시, 곧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말씀들을 폭포수 같이 해방해 내었다. 1952년 신앙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에게 투옥된 워치만 니는 20년에 걸친 수감 생황 동안 믿음을 지키다가 1972년 순교하였다.

워치만 니와 그의 동역자들로 인한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차지하기 전까지 적어도 600개의 지방 교회들이 있었다. 대표적 저서로는「영에 속한 사람」을 비롯해, 2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등이 있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그가 남긴 말씀들은 영적인 계시와 풍성한 보고(寶庫)로 남아 전 세계그리스도인들을 공급하고 있다.

2.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주후 1905-1997)

- 1905년 중국 북부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19세 때에 그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사로잡혀, 즉시 그의 일생을 복음 전파를 위해 드리려고 헌신했다. 그의 봉사의 초기에 그는 유명한 설교자, 교사, 저술가인 워치만 니를 만났다. 위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의 지도 아래 그와 함께 일했다. 1943년에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에게 ‘상해복음서원’ 출판 사업의 책임을 맡겼다. 위트니스 리는 1933년 상해에서 워치만 니와 함께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다. 1948년 워치만 니와 다른 동역자들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교회들 안에서 회복된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위트니스 리를 대만에 보내야 한다고 느꼈다.

공산당이 1949년에 점령하기 전에 위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와 그의 다른 동역자들에 의해 대만으로 보내어져 사역했으며, 대만에 있는 교회들은 중국 본토에서 새로 피난 온 단 350명 정도의 성도들로 시작하여 5년 내에 20,000명으로 성장했다. 1962년에 위트니스 리는 미국으로 가야한다는 주님의 인도를 느끼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미국에서 섬긴 35년간 그는 주중 집회들과 주말 특별집회에서 칠팔천여 메시지를 전했다. 그가 전한 말씀 중 많은 것들이 400여 개 이상의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 중 많은 책들이 14개 이상의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그의 공식적인 마지막 특별집회는 91세 때인 1997년 2월에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목표는 편협한 종파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그의 확신을 굽히지 않았고, 믿는 이들은 이러한 확신에 반응하여 단순히 그들의 지방에 있는 교회로서 모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많은 동구 국가들에도 새로운 교회들이 세워졌으며, 미국에서는 기독교 방송에서 그의 메시지들을 들을 수 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높은 진리들을 해방하였다. 하나님의 경륜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이 사람 되심은 사람으로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조성하여 새 예루살렘 즉, 신성과 인성의 연합인 우주적인 합병체를 완결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현재 주님의 회복을 신성한 계시의 고봉으로 이끌었다.

오늘날의 회복

오늘날의 회복의 항목들이 깊고 폭넓지만, 하나님의 경륜의 빛 안에서 우리는 간단히 두 항목으로 주님의 회복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그분의 회복 안에서 두 항목을 회복하기를 갈망하십니다. 첫 번째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고 체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된 교회 생활의 실행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의 노선 안에 있는 그분의 종들을 통해 굳게 닫힌 성경을 해방해 주시고, ‘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진리를 보여주시며, 온 땅으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또한 말씀 안에 있는 진리의 깊이들을 열어주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는 것에 대한 이해와 체험 안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인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모든 소중한 항목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 교회가 없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이 모든 소중한 항목들은 다 교회를 위한 것이며, 참된 교회생활을 산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이 회복하시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이나 교회에 관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분께서 회복하시고 계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누림과 합당한 교회 생활의 실행입니다. 이 두 항목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실지적으로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린 결과로 교회 생활이 산출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도록 풍성하시며, 바로 이 분께서 사람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증거 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시는 객관적인 분이 아니라, 오늘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시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과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놀랍고 기묘하여 사람의 언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그분의 인격에 대한 누림과 감상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며 우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간교한 대적 사탄은 수세기의 교회사에 걸쳐 많은 믿는이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는 믿는이들이 살아계신 한 분 그리스도에게서 다른 많은 것들로 눈을 돌리게 했습니다. 사탄은 심지어 성경적인 것, 선한 것, 율법적인 것들로 믿는이들의 주의를 돌려 모든 것을 포함한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의 교리와 종교의 전통에서부터,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매일의 누림이시며, 가장 사랑스럽고 달콤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풍성하신 그리스도 자신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현재의 회복의 첫 번째 항목은 그리스도의 풍성의 누림의 회복입니다.

두 번째는 합당한 교회 생활의 실행의 회복입니다. 단지 교회에 대한 교리나 교회 생활에 대한 이론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고, 주님 또한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사진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지만 청사진이 건축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청사진이 아니라 그분의 거처를 위한 실제의 건축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신성한 계시와 청사진을 따라 교회 생활을 실행할 부담을 주셨습니다. 교회 생활의 실행에서 우리는 역사적인 교회의 전통을 보존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빛 안에서 행하기를 추구합니다. 실제적으로 교회를 건축하기를 요구하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교회가 지방들에서(localities) 각 지방 마다 한 행정으로 하나의 교회로 건축되도록 정하신 것은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아닙니다. 이 땅 위에 교회를 확산하기 시작하신 분은 주님이시지 우리가 아닙니다. 대적과 종교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건축과 교회의 확산은 계속되었습니다. 사실상 반대는 건축과 확산을 촉진했습니다. 주님은 음부의 문이 이길 수 없는 교회를 건축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마음의 갈망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계의 혼돈 가운데에서도 주님은 그리스도의 풍성의 누림으로 채워진 교회 생활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태초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믿는이들에게 모든 것이었고 교회 생활은 지방의 하나의 터 위에서 실행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분의 긍휼과 은혜로 주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누림과 교회 생활의 실행이 있는 태초로 되돌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회복입니다.

사도들의 시대에는 교회들이 어떠했습니까? 처음에는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우리의 이해가 분명하다면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하여도 분명해 질 수 있고 왜 오늘날 우리의 갈망이 하나님이 신약에서 초대 교회들에 세우신 것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도 분명해 질 수 있습니다.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초기의 믿는이들은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했습니다. 한 도시의 모든 성도들은 하나 안에서 함께 교회 생활을 했으며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통 안에서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도 시대 바로 직후 초대 교회의 이 간증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생명 없는 가르침과 전통들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잃어버린 것들을 점진적으로 계속 회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역사는 주님께서 처음에 일으키신 간증과, 그 간증의 손실과, 그 후의 수세기에 걸친 주님의 점차적인 회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신약 시대에 걸쳐 주님께는 항상 이 땅 위에서 주님의 간증을 지킬 남은 자들, ‘나의 말을 지켰고, 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은(계 3:8)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때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영적 하락이 시작되고, 어둠은 중세 암흑시기를 거쳐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기독교는 말씀의 빛과, 그리스도의 체험과, 교회 생활의 실행과, 심지어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회복의 흐름이 밀려들어오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한 흐름 속에 소수의 신실한 성도들이 주님의 간증으로 서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회복의 일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들은 이전 세대들이 쌓아올린 것 위로 계속 건축해왔고, 회복은 크게 전진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회복은 찬란한 광명 안에 영광으로 충만합니다. 주님의 회복 앞에는 시온의 대로가 펼쳐져 있습니다. 앞 세대로부터 이어지고 전진된 회복의 모든 영적 유산은 우리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마지막 경주자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태만하지 말고 회복의 일을 계속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점이나 주름이나 그 같은 것들이 없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엡 5:27) 서 있기를 원합니다.